✨ 로맨스릴러 · 예술고
★ 9.98
《천재들의 예고에서 1등을 차지하는 방법》
작가 펜슬 · 조회수 142만 · 선호작 3.8만
📖 작품 소개
대한민국 예술계 최정점 예술고등학교. 베프이자 라이벌인 나경과의 치열한 성악 경쟁, 다정한 피아노 선배 예준의 설레는 데이트, 그리고 늘 곁을 지키는 츤데레 바이올리니스트 시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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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1
실기 평가와 찐친
제1장: 7번의 마법, 그리고 찐친의 온도
예술고등학교 성악과의 실기 평가장은 언제나 묘하게 차가운 정적이 감돌았다. 대기실에 모인 학생들은 저마다 목을 풀거나 악보를 쥐어짜듯 훑어보고 있었다.
무대 뒤편, 추첨함 앞에 선 채영은 손을 넣어 번호표를 뽑아 들었다. 플라스틱 상자 표면에 각인된 숫자는 7.
"너 진짜 뽑기 운 하나는 좋네 어떻게 매번 앞순번만 나와?"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베프이자 늘 0.1점 차이로 성악과 1, 2위를 다투는 윤나경이 서 있었다. 나경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번호표를 바라보았다.
"그러게. 이 정도면 운도 실력일지도?"
채영이 번호표를 짤랑거리며 덤덤하게 웃어 보였다. 둘은 학교에서 제일 친한 베프 사이였지만, 무대 위에서는 서로를 제일 잘 알고 제일 경계하는 라이벌이기도 했다.
"이번엔 내가 1등 한다. 똑바로 해라."
"꿈도 크네. 너 잘해도 내가 더 잘할 예정이거든요?"
나경이 피식 웃으며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겉으로는 티격태격해도 서로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인정하기에 나오는 찐친들의 여유였다.
이윽고 조명이 켜지고 무대 중앙으로 나아간 채영은 교복 차림 그대로 홀 한가운데 섰다. 8명의 심사위원이 버티고 앉아 있는 메인 홀의 공기는 묵직했다.
채영은 호흡을 가다듬고 반주자의 첫 음에 맞춰 입을 열었다.
가볍고 통통 튀는 전주가 울려 퍼지고, 채영의 입에서 첫 소절이 흘러나오는 순간이었다.
《La fioraia fiorentina (피렌체의 꽃 파는 아가씨)》
채영이 소리를 뱉을 때마다 따스한 햇살이 홀 안으로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싱그러운 생기가 가득 담긴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품에 안긴 꽃다발에서 달콤한 향기가 뿜어져 나올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노래 속에서 채영은 순식간에 피렌체 광장 한가운데서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꽃을 건네는 아리따운 소녀로 변신해 있었다.
호수처럼 투명하면서도 가슴을 간지럽히듯 화사한 깊이감. 채영의 목소리가 홀 전체를 부드럽게 채워나가는 그 순간, 앞서 채점표에 날카롭게 무기를 갈던 8명의 심사위원들의 펜 끝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멈췄다.
무대 뒤에서 팔짱을 끼고 듣고 있던 나경도 나지막하게 탄성을 뱉었다.
'…아, 진짜 잘하네.'
질투보다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깔끔한 소리였다.
노래가 끝나고 무대를 내려오는 채영을 향해 복도 벽에 기대어 있던 바이올린과 윤시우가 무심하게 고개를 들었다.
"야, 너 마지막 음정 플랫됐다."
"…?"
어이없다는 눈으로 노려보자, 시우는 시선을 슬쩍 피하며 덧붙였다.
"…뭐, 그래도 잘했다고."
"아, 말을 꼭 저렇게 하지."
피식 웃으며 가방을 고쳐 멨을 때, 피아노과 3학년 한예준이 복도 건너편에서 걸어왔다.
"오늘 소리 완전 짱짱하던데? 잘하더라! ㅎㅎ"
"그래요?! 다행이다…!"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슬쩍 안도하는 채영을 보며, 예준이 다정하게 머리를 툭 치고 지나갔다. 예준의 다정한 칭찬 한마디에 볼이 발개진 채영은 괜히 입꼬리를 심하게 씰룩거리며 웃음을 참아내야 했다.
Chapter 02
연습실과 데이트 약속
제2장: 연습실, 그리고 든든한 반주자
실기 평가장의 차가운 공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곧바로 이어질 향상 음악회를 앞두고 예고 연습실 동은 밤 9시가 넘어도 열기로 가득했다.
"선배, 여기서 제가 숨 한 번 크게 쉬고 들어가게 반주 박자 조금만 맞춰주세요."
피아노 앞에 앉은 예준은 다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당연하지. 네 호흡 편한 대로 해. 내가 완벽하게 맞춰줄 테니까 걱정 말고 편하게 불러."
예준은 건반 위에 손을 올리고 숨소리 하나하나에 딱 맞게 반주를 얹어주었다.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도 예준의 섬세한 터치와 따뜻한 눈빛은 큰 안도감을 주었다. 건반을 누르는 예준의 기다란 손가락에 자꾸 눈길이 머물렀다.
잠시 연습을 쉬는 시간, 예준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슬쩍 물었다.
"어제 카톡 확인했어?"
"아, 영화 보러 가자는 거요?"
"응. 연습하느라 머리 아픈데 주말에 머리도 식힐 겸 영화나 보러 가자. 시간 괜찮지?"
"네, 좋아요! 맛있는 것도 사주시는 거죠?"
"당연하지. 네가 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
예준의 다정한 미소에 속으로 '선배는 그냥 후배 챙겨주려고 가는 건가, 아니면…' 하는 생각에 괜히 심장이 살짝 뛰어댔다.
그때 연습실 문이 덜컥 열리며 윤시우가 들어왔다. 시우는 손에 들고 있던 차가운 자몽 에이드 캔을 채영의 볼에 툭 다가대었다.
"아, 차가워! 뭐야, 윤시우?"
"차갑긴, 정신 차리라고. 너 안 가고 아직도 여기서 살고 있냐?"
"너나 집에 가라. 나 거의 다 끝났거든?"
시우는 투덜거림을 들은 척도 안 하고 연습실 구석 의자에 털썩 앉아 바이올린 케이스를 올려놓았다.
"다 끝났으면 음료수나 마시고 정리해. 나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같이 가자."
갑자기 들이닥친 난감한 상황에 선배를 쳐다보았다.
"난 실기 연습 더 하고 가야해서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오늘 수고했어."
"감사해요 선배! 쟤가 저렇게 막무가내라니까요."
시우는 핸드폰에 눈을 고정한 채 무심하게 앉아있었다. 예준이 둘을 번갈아 보며 살짝 웃음을 지었다.
방금까지의 훈훈한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연습실. 문이 닫히고 홀로 남겨진 예준의 표정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예준은 다시 그랜드 피아노 앞에 묵묵히 앉았다. 방금 전의 다정한 선배의 얼굴은 완전히 지워지고 손가락 끝에서 음악이 시작된다. 리스트의 초절기교 에튀드 중 제10번.
이 곡은 단순히 화려한 테크닉을 뽐내는 곡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몰아치는 시련과 거센 흔들림 속에서도, 결코 주저앉지 않고 온몸으로 부딪히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치열한 의지가 담긴 곡이었다.
투두둑— 쾅!
예준의 손끝에서 터져 나오는 선율은 때로는 위태롭게 흔들렸지만, 그 속에서도 스스로를 다독이며 거대한 폭풍을 포용하듯 묵직하게 전진했다. 눈을 감은 채 몰두하는 예준의 옆모습에는, 엇갈리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음악이라는 거대한 그릇에 묵묵히 담아내려는 짙은 예술가의 아픔과 서사가 깊게 배어 있었다.
Chapter 03
급식실 수다와 하굣길
제3장: 석식 시간의 비밀 협정과 하교길의 돌멩이
예고의 석식 시간은 언제나 시끌벅적했다. 식판을 들고 급식실을 둘러보던 채영은 구석 자리에서 이미 한가득 음식을 퍼 나르고 있는 윤나경을 발견하고 쏜살같이 달려가 앉았다.
"야, 나 어제 레전드 발견."
"왜. 무슨 일이야. 뭐 설마 혹시 새로운 레브 굿즈 출시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어제 실기 끝나고 내려오는 계단에서 진짜 레전드 선배 봤어."
"또 어떤 미친 비주얼을 봤길래 그러냐. 우리 과 선배들은 다 그 나물에 그 밥이잖아."
"아니, 현악기 쪽. 우리과는 인물 없지. 손끝에 굳은살 있는 거 보니까 현악기 같더라. 분위기가 아주 그냥… 장발에, 고져스했어."
나경은 채영의 말을 들으며 턱을 괴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손가락 끝 굳은살…? 그 짧은 시간에 자세히도 봤다? 근데 장발이면 그 선배 아니야? 그때 정기연주회 때 기악과 대표로 협연했잖아."
"헐, 역시 내 베프! 맞다, 생각해보니까 맞는 것 같네!"
채영이 감탄하며 젓가락을 탁 쳤다.
"머리칼 살짝 넘길 때 아주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니까."
"우리 담에 합주실이나 가서 얼굴이나 보고 올까? 인사도 할 겸 보러 가자."
나경이 좋은 생각이라고 박수를 치며 채영의 밥그릇에 자신이 아끼는 소세지 2개를 얹어주었다. 치열한 경쟁 따위 쿨하게 잊고, 좋아하는 음악과 사랑 덕질 가득한 수다로 채워지는 평화로운 예고생들의 저녁이었다.
야간 자율 연습이 끝난 밤 10시. 채영은 가상 버추얼 아이돌 '레브(REVE)'의 신곡을 들으며 교문을 나섰다. 어깨가 무거워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뒤에서 익숙한 운동화 소리가 따라붙었다.
"야."
윤시우였다. 시우는 진작에 연습이 끝났으면서도 채영이 나온 시간에 맞춰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너 안 가고 뭐 했냐?"
"악기사 들리고 밥 먹고 나니 늦었다. 왜."
말은 그렇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채영의 어깨에서 무거운 가방을 툭 빼앗아 제 어깨에 멨다.
"가방에 돌 넣었냐?"
"뭐래 바보가."
시우는 앞장서 걸었다. 입으로는 맨날 툴툴대면서도 채영의 걸음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걸어주는 무심한 다정함. 채영은 시우의 넓은 어깨 뒤에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은근히 챙겨주는 건 1등이에요, 진짜…."
다정한 첫사랑 예준 선배의 설레는 약속과, 늘 곁에서 든든하게 가방을 들어주는 츤데레 시우. 그리고 베프 나경이와의 라이벌전까지. 예고에서의 18세 청춘은 이제 막 최고의 악장을 연주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Chapter 04
영화관 데이트와 마주침
제4장: 주말 데이트와 뜻밖의 시선
토요일 오후, 상상마당 근처 한 영화관 앞.
채영은 약속 시간 10분 전에 도착해 거울을 보며 연신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었다. 과하지 않게 신경 쓴 차림이었지만,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채영아."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흰 셔츠에 무심하게 어두운 톤의 오버핏 가디건을 걸친 예준이 걸어오고 있었다. 과하게 힘주지 않아 더 센스 있어 보이는 차림에 채영은 속으로 감탄하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많이 기다렸어? 미안, 차가 좀 막혀서."
"아니에요! 저도 방금 왔어요!"
영화 표를 끊고 팝콘과 음료를 사 들자 채영의 손이 부족해졌다. 휴대폰에 지갑, 음료수 컵까지 아슬아슬하게 들고 쩔쩔매는 모습에 예준이 피식 웃으며 자연스럽게 손을 뻗었다.
"이리 줘. 내가 들 테니까 지갑이랑 폰 가방에 편하게 정리해."
"앗, 괜찮은데…!"
"괜찮긴. 위험하잖아."
예준은 채영의 손에서 팝콘과 음료를 쓱 가져가 들고는, 채영이 편하게 가방을 정리할 수 있도록 옆에서 다정하게 기다려주었다. 사소하지만 몸에 밴 듯한 매너에 채영의 볼이 순간 화끈거렸다.
상영관 안,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영화가 시작되었다.
한창 영화에 몰입해 있던 중, 채영은 방금 지나간 스토리가 살짝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돌려 옆자리의 예준을 바라보았다.
"선배, 방금 저 사람이…"
그 순간, 마침 똑같이 채영 쪽으로 고개를 숙이던 예준과 시선이 정확히 맞물렸다.
어둠 속에서 예준의 얼굴이 숨이 닿을 만큼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은은하게 감도는 예준의 향수 냄새와 함께, 예준의 깊은 눈동자가 채영의 눈을 똑바로 담아냈다. 채영은 순식간에 숨을 멈추었다. 순간 영화관의 소음이 모두 사라지고, 심장 소리만 귓가에 쿵쾅거리는 듯했다.
예준은 짧은 정적 속에서 채영을 바라보다가, 이내 눈꼬리를 부드럽게 접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채영의 귓가에 속삭였다.
"응? 뭐라고 했어?"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채영은 부끄러움을 감추려 황급히 고개를 앞쪽으로 돌렸지만, 데인 것처럼 화끈거리는 얼굴을 식히기가 쉽지 않았다.
꿈만 같던 데이트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채영은 기분 좋은 설렘에 젖어 동네 놀이터 벤치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근처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물고 나오던 시우와 딱 마주쳤다.
"어, 윤시우?"
시우는 츄리닝 차림에 체육복 상의를 걸친 편안한 모습이었다. 채영을 발견한 시우가 터덜터덜 걸어오더니, 채영의 차려입은 모습을 힐끗 훑어보았다.
"야, 너 오늘 어디 무슨 연주회라도 다녀왔냐? 웬일로 치마까지 입었대?"
"나 오늘 예준 선배랑 영화 보고 왔거든?"
채영이 빽 소리를 지르며 쏘아붙이자,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던 시우의 손길이 순간 멈칫했다. 시우의 무심하던 눈빛이 살짝 흔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툭 던지듯 물었다.
"…한예준 선배랑? 둘이서만?"
"응!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사주셨거든? 너처럼 틱틱대지도 않고 얼마나 다정한데!"
채영이 자랑스럽게 말하자, 시우는 괜히 아이스크림 막대를 씹으며 시선을 딴 데로 돌렸다. 은근히 굳어진 시우의 얼굴에 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고 얼른 집에나 들어가라."
Chapter 05
카르멘 합주와 빗속의 츤데레
제5장: 하바네라의 붉은 열기, 그리고 빗속의 츤데레
축제를 코앞에 둔 학교는 이미 축제 분위기에 들떠 대부분의 연습실이 텅텅 비어 있었다.
단 한 곳, 구석의 메인 연습실만 제외한.
그 안에서 채영과 시우는 교내 축제 오프닝 무대를 위해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지난 학기 실기 우수자들은 축제 오프닝 공연을 매번 맡아 연주하기 때문이다.
이번 오프닝의 메인 곡은 그 유명한 오페라 《카르멘》 중 <하바네라(Habanera)>.
"야, 거기서 소리 더 당겨야지. 도망가지 말고 똑바로 질러."
"아, 알거든? 네 바이올린 활대가 너무 당겨지니까 내가 묻히잖아!"
연습실 안은 시작부터 두 사람의 티격태격하는 목소리로 시끌벅적했다. 악보를 쾅 내리치며 째려봐도, 시우는 늘 그렇듯 능청스럽게 바이올린을 턱 밑에 괴며 피식 웃을 뿐이었다.
하지만 막상 연주가 시작되면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시우가 켜는 매혹적이고 아슬아슬한 바이올린 선율이 실내를 채우면, 채영은 그 위에 관능적이면서도 단단한 목소리로 《카르멘》의 선율을 얹었다. 두 사람의 소리가 절묘하게 맞물리며 텅 빈 연습실 가득 소름 돋는 화음이 폭발하듯 울려 퍼졌다.
"……."
마지막 음을 길게 뽑아내며 호흡을 정리하던 순간, 시우가 연주를 뚝 멈추고 채영을 바라보았다.
연습실 창밖으로 언제 내리기 시작했는지 굵은 빗방울이 유리창을 두드리고 있었다. 연습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어느덧 밤 10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연습 끝. 오늘은 이만 가자."
시우는 악기를 주섬주섬 케이스에 넣으며 무심하게 말했다. 밖을 보니 비가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다. 우산이 있을 리 만만찮은 채영이 인상을 쓰며 가방을 뒤적거릴 때였다.
시우가 제 가방에서 검은색 3단 우산을 툭 꺼내 채영의 손에 쥐여주는 척하며 손을 위로 들어올린다.
"아이고 나는 있는데 난 이거 쓰고 갈 거야."
"어쩌라고 왜 줬다 뺐어 이 거지 같은 놈아."
"아니 나는 쓰고 갈 거라고?"
"미친 놈."
시우는 툭 내뱉고는 제 바이올린 케이스를 어깨에 척 메고 먼저 연습실 문을 나섰다.
황급히 쫓아 나가 우산을 펴기 직전인 윤시우를 발견하고 채영이 시우의 우산 타이밍에 맞춰 품으로 뛰어갔다.
"야, 윤시우! 잘 씌워라?"
채영이 까치발을 들고 제 품으로 들어오자, 갑자기 확 가까워진 거리 속에서 시우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가로등 불빛 아래, 빗방울이 맺힌 시우의 머리칼과 쌍꺼풀 진 눈동자가 채영을 정면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평소의 그 장난기 어린 툴툴거림은 온데간데없고, 숨이 멎을 듯한 진지한 눈빛이 가라앉아 있었다. 시우가 천천히 손을 뻗어, 채영의 어깨에 묻은 빗방울을 무심하게 툭 털어내 주었다.
"……너 자꾸 그렇게 무방비하게 굴래?"
낮고 잠긴 목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고스란히 채영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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